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빌 클린턴 (문단 편집) == 여담 == * 그가 대통령으로 재임했던 1993년부터 2001년까지는, [[제1차 세계 대전]] 종전~[[대공황]] 직전을 가리키는 [[광란의 20년대]]와 [[제2차 세계 대전]] 종전 직후인 [[1950년대]]부터 [[오일 쇼크]] 발생 직전인 [[1970년대]] 초반기까지의 두 시기와 더불어, 미국 역사상 가장 긴 경제적 팽창기였다. 그러나 그것은 [[닷컴버블]]로 인했던 것으로, 그가 대통령 자리에서 퇴임한 지 두 달 만에 미국 경제는 하락세로 접어들었다. 허나 클린턴의 집권기가 유독 주목받는 이유는 전대의 황금기들이 제국주의 서유럽 국가들 혹은 소련과 세계 패권의 파이를 나눠먹었다면, 이 시기는 오로지 미국이 홀로 완벽하게 [[팍스 아메리카나|세계 패권을 주무를 수 있었던 독보적인 초강대국]]으로 군림했었다는 것에 의의가 있다. 현재의 미국인들이 가장 그리워하는 포인트이기도 하다. 그리고 90년대의 황금기는 클린턴 퇴임 이후 조금씩 하락세였다고는 하지만 기본적인 호황은 후임 대통령이었던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2006년까지 길게 이어졌으며 이는 부시 행정부인 2008년 말,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를 통해 깨지게 된다. * '''20세기 마지막 대통령'''이자 '''21세기 첫 대통령'''이다. 퇴임 직전이던 2001년 1월 1일에 21세기가 개막했다. * 상당한 [[동안]]으로 [[조지 W. 부시]], [[도널드 트럼프]]와 동갑이다(생일은 반대로 클린턴이 가장 늦었다). 아이러니하게도 현역 시절엔 정적이었던 조지 W. 부시랑 지금은 절친하게 지낸다. 둘이 리더십 프로젝트로 같이 교육 프로그램도 만들고 행사에도 같이 나오고 아이스 버킷 챌린지에서 부시가 클린턴을 지목할 정도로 친한 사이. 왜냐 하면 둘 다 이미 미국의 대통령으로 임기를 모두 마치고 퇴임했기 때문이다. 한쪽이 낙선했더라면 사이가 절대로 좋을 수 없다. 그리고 이 둘이 정반대의 정당 출신 대통령이었어도 공과 사의 구분이 명확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으로 클린턴과 아들 부시는 공적으로는 정적이었어도 사적으로는 이젠 친구가 되었다.[* 비슷한 예시로 문재인 대통령과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가 정치적으로는 완전 정반대 성향이지만 사적으로 절친이다.] * 중간 이름에 나오듯이 미국 대통령을 지낸 [[토머스 제퍼슨]]을 존경한다고 한다. 공교롭게도 둘 다 불륜 혐의가 있고(...) 공화당에서는 당신은 제퍼슨이 아니라며 조롱하기도 했다. * [[폴아웃 3]]에서 [[엔클레이브(폴아웃 시리즈)|엔클레이브]]의 대통령인 [[존 헨리 이든]]의 성우로 나와줄 것을 요청받은 적이 있다. 클린턴은 정중히 거절했다고 전해진다. * 영화팬이며 한때 배우가 되려는 꿈도 가지고 있었다. [[월간조선]]의 관련 기사에 따르면 영화 [[인디펜던스 데이#s-2]]가 개봉했을 때, 백악관에서 사람 여럿 불러놓고 본 적 있다. 꽤 만족스럽게 보았다고 하며, 특히 백악관이 폭발하는 장면에서 엄청 즐거워했다고 한다. * [youtube(CRatTuWdT_Q)] [[색소폰]] 불기를 좋아했으며 실력도 수준급이었다. 이 영상은 1992년 영상으로 당대 [[투나잇 쇼]] 다음으로 인기 있던 토크쇼인 [[아세니오 홀]]의 "The Arsenio Hall Show"에서 [[엘비스 프레슬리]]의 [[Heartbreak Hotel]]을 색소폰으로 부는 영상으로, 이 영상으로 인해 '''빌 클린턴의 지지율이 급상승했다.''' 빌 클린턴의 경제에 대한 구호가 지지율의 일등 공신이긴 했으나, 대통령 후보가 인기 토크쇼에 나와서 엘비스의 노래를 색소폰으로 부는 광경은 미국인들을 열광시키기에 충분했다. 이를 계기로 재임 기간 내내 '색소폰 부는 대통령'이라는 기믹이 꽤 유행했다. [[레슬리 닐슨]]의 패러디 영화에서도 닮은꼴 배우가 색소폰을 부는 장면이 나온다. 더불어 [[심슨 가족]]에서도 이런 기믹을 밀고 나온다. 뭔가 말하기 곤란한 장면에서 색소폰을 부는 식으로. * 몹시 어렵던 유년 시절부터 주식으로 먹었던 [[패스트푸드]]를 대통령 재임기에도 즐겨 먹었다. 제일 좋아하는 음식은 [[햄버거]]. 각료들과 햄버거를 먹으며 각료회의를 하기도 했으며, 대통령 재임기에도 백악관을 나가 [[맥도날드]]의 햄버거를 자주 사 먹었다고 한다.[* 참고로 이때 모자 쓰고 얼굴 가려서 경호원까지 따돌렸다고 한다!] ~~식습관이 이런데도 키가 188이다~~당연히 이런 식성이 클린턴의 심장질환에 크게 영향을 끼친 것 역시 사실이다. 아내인 힐러리는 이런 남편의 식성을 걱정해서 대통령 식단에 여러 야채를 올려뒀지만, 빌은 그걸 다 먹고 '''[[콜라]] 한 캔과 과자를 먹는 등''', 그런 아내의 노력을 다 물거품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결국 대통령 퇴임 후인 2004년 심장질환으로 수술을 받았고, 스스로 변화의 필요성을 느꼈는지 채식 위주로 식단을 바꾸고 체중을 많이 줄였다.[* 재임 당시만 해도 100kg가 약간 넘었으나, 지금은 두 자리 체형으로 줄었을 가능성이 높다.] 빌이 퇴임하고 20여년 뒤 그의 아내를 대선에서 이기고 대통령이 된 [[도널드 트럼프]]도 햄버거를 비롯한 패스트푸드를 무척 즐긴다. 도널드 트럼프는 빌 클린턴과는 달리 태생부터 상류층이지만 워낙 빠르고 간편한 걸 선호하다 보니 패스트푸드를 입에 달고 살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심지어 조간회의 때 다이어트 콜라 5-6캔 정도를 까 마신다고 하며, 아예 집무실 책상에 따로 빨간색 버튼을 설치해 이 버튼을 누르면 백악관 주방에서 다이어트 콜라를 가지고 온다는 얘기까지 들렸다. 그러나 바이든 집권 후 이 콜라 버튼을 치웠다. 다만 이 분은 아이스크림을 너무 좋아해서... * 어머니 쪽 이부(아버지가 다른) 동생인 [[로저 클린턴]]은 가수로 활약하고 있고, 더럽게 재미없는 B급 호러영화 펌프킨 헤드 2에 대사 좀 있는 단역으로 출현했는데 이 영화가 국내 개봉할 당시 내한을 했다. 당연히 대통령 동생이라는 후광을 받아서. 친아버지 쪽으로는 이복형 헨리 레온 리첸탈러(Henry Leon Ritzenthaler)[* 그의 새아버지의 성을 따른 것.]와 이복누나 샤론 리 페티존(Sharon Lee Pettijohn)이 있다. * 오랫동안 정치 활동을 벌이고 있는 아내 힐러리 외에도, 딸인 첼시 클린턴(1980년)도 곧 정계에 진출할 예정이라는 소문이 워싱턴 정계에 퍼져 있다. 첼시는 만 17살 때 대학 졸업 후[* 미국은 [[월반제]]가 있다.] 뉴욕 [[월스트리트]]에서 금융가로 있다가, 언론 리포터와 국제관계학 분야에서 종사하고 있다. 클린턴 부부가 설립한 대형 재단에 '빌·힐러리·첼시 클린턴 재단'이라 하여 첼시의 이름을 붙이는가 하면 [[넬슨 만델라]] 추모식에 첼시를 동반하기도 했다. 단순히 부모로서 딸을 생각하는 수준으로 보기에는 지나치게 공식적이고 노골적인 형태라 벌써 정치 후계자 수업을 하는 것이 아니냐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사실 70대에 접어든 클린턴의 나이나, 2017년 기준 30대 중반이 된 딸의 나이를 생각하면 '벌써'라는 수식어를 붙일 만한 정도는 아닌 것 같다. * 미국의 황색 언론에서는 무남독녀 [[첼시 클린턴]]이 빌의 친딸이 아니라 힐러리가 외도로 낳은 혼외자식이라는 악의적인 소문이 돌고 있다. 이들의 '빌 클린턴은 무정자증이고, 힐러리는 옛 애인이었던 변호사와의 사이에서 아이를 가졌고, 빌은 그 사실을 알고도 아이가 있는 쪽이 자신들의 이미지에 더 좋을 것이라고 생각해 그냥 가만히 있는 거다', '첼시는 빌과 전혀 닮지 않았다' 라고 주장한다. 으레 황색 언론의 보도들에 대한 반응이 다 그렇듯 이러한 가쉽성 보도에 대해 미국 사회에서의 반응도 [[이뭐병]]. * 달변가로 유명하다. 미국의 제38대 대통령 [[제럴드 포드]]는 빌 클린턴을 "이미 녹아 버린 얼음도 (얼음이라고) 팔아먹을 수 있는 화술의 인물"이라 말했다. 물론 좋은 말만 한 건 아니고 "여자만 보면 눈을 두리번거리는 섹스 중독자"라고 평하기도 했다. [[https://archive.is/5I8WT|archive]] [[https://bit.ly/2jFLtdb|wayback]] * 클린턴 정부 시기의 [[한반도]] 통치자 기준으로 [[노태우]], [[양김]] 콤비였던 [[김영삼]] [[1997년 외환 위기|~]], [[2000 남북정상회담| 김]][[김대중|대중]](-[[김일성]](말년) & [[김정일]](권한대행 시기) 부자지간 그리고 [[김영남]]) 때이다.--[[김종필|이 분]]도 만났으면 [[삼김시대|이 조합 멤버들]]을 다 만났을뻔-- 또한 대한민국에선 [[전국동시지방선거|민선 지방자치제]]가 이 시기에 처음 시작되기도 했다. * 클린턴을 "[[버락 오바마|최초의 흑인 대통령]]"이라며 장난스럽게 부르기도 한다. 흑인 문학가 토니 모리슨이 한 발언에서 비롯된 건데, 모리슨은 빌 클린턴이 평소 흑인들이 애용하는 색소폰을 애용한다는 점, 흑인들처럼 빈민층 출신이라는 점, 때문인지 식습관이나 생활습관이 흑인의 습관과 가깝다는 점(패스트푸드를 즐겨먹는 점 등)을 들어 그리 말한 것이다. 한 마디로 '겉은 백인이지만 속은 우리 흑인들과 같아 흑인들을 잘 이해해주는 좋은 대통령'이라는 의미에서 흑인 대통령이라 빗댄 것이다. 실제로 클린턴은 백인이면서도 흑인들에게 엄청난 인기를 얻고 있다.[* 한 여론조사에서는 미국 내 흑인의 90%가 클린턴을 지지한다는 결과가 나왔을 정도였다고 한다. 이것 때문인지는 몰라도 2008년 민주당 경선 초기 당시 흑인 사회에서 힐러리가 정작 흑인인 오바마보다 압도적으로 많은 지지를 얻었었다고 한다...] 때문에 오바마는 미국 최초의 혼혈 대통령일 뿐이고 빌 클린턴이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라 [[카더라]].[* 다름아닌 [[모건 프리먼]] 옹이 한 말이다. 흠좀무.] 상기한대로 흑인 문화에 일가견이 있었고 정치적으로도 흑인 문제나 성적 소수자 문제를 해결하는 데 많은 관심을 가졌으며, 2012년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오바마 지지 선언을 함으로서 정말로 흑인을 위한다는 이미지가 더해져 오바마 당선 이후로 사용 빈도가 더 늘어난 듯하다. * 아이러니하게도 아내인 힐러리가 2016년 미국 대선에서 패배한 후 평판이 더욱 올라가고 있다. 그 이전에는 똑부러진 힐러리, 사고뭉치 빌의 이미지가 있었다. 빌이 대통령이 된 것은 똑똑한 힐러리의 내조 덕분이었다는 평은 덤.[* 하지만 현실은 힐러리가 남편 덕을 본 것에 가깝다.] 그러나 인기 절정의 현역 대통령을 꺾고 재선에 승리한 빌 클린턴과 달리 질 수 없는 대선이라는 평이 자자했던 선거에서 패한 힐러리 클린턴이 대조되면서 평판은 다시 완전히 역전되었다. 힐러리가 2016년 대선에서 진 것은 자신에게 크게 유리한 판이라는 자만심에 빠진 나머지 가난한 백인들(특히 [[러스트 벨트]])의 중요성을 간과하는 결정적 오판을 저질렀기 때문이다. 이때 당시 빌 클린턴은 이 러스트 벨트의 중요성에 대해 정확히 간파하고 아내에게 충고했지만 씹혔다(...). 힐러리 캠프의 이러한 대접에 이 러스트 벨트 지역 유권자들은 트럼프의 손을 들어줘 힐러리의 정치 경력에 마침표를 찍는 것으로 보답했다. 좋은 충고를 가려내고 수용하는 능력은 정치인으로서(특히 대권을 노린다면 더더욱) 가장 중요한 소양임을 생각해보면... * 한국의 배우 [[노주현]]과 생년월일이 같으며, 그가 취임식을 가졌던 1993년 1월 20일은 할리우드의 전설적인 배우였던 [[오드리 헵번]]이 사망한 날이기도 했다. * 1980년대 이후, [[조 바이든]]과 함께 대표적인 공화당의 [[텃밭(정치)|텃밭]]인 [[조지아 주]]와 [[애리조나|애리조나 주]]에서 이긴 유이한 대통령이다. 차이점이라면 바이든은 둘 다 이긴 반면 클린턴은 조지아를 초선, 애리조나를 재선 때에만 이겼다. * 학창시절에는 촌스러운 옷으로 아이들의 놀림감이 되기도했고, 클린턴을 한 대 후려치는 학생도 있었다. * 가장 최근에 [[켄터키]], [[테네시]], [[웨스트버지니아]], [[미주리]], [[아칸소]], [[루이지애나]], [[몬태나주|몬태나]]에서 이긴 민주당 대통령이었다. 부부가 둘 다 출마하면서 남편만 가져간 주는 켄터키, 테네시, 웨스트버지니아, 애리조나, 조지아, [[플로리다]], [[위스콘신]], [[미시간]], [[펜실베이니아]], [[아이오와]] 그리고 [[메인]] 2구였고 아내만 가져간 곳은 [[버지니아]]뿐이다. * 2018년 6월, 작가 [[제임스 패터슨]]과 공동으로 '대통령이 사라졌다(The president is missing)'라는 제목의 범죄 스릴러 소설을 출간했다. 대통령 조나단 던컨이 탄핵 위기에 놓인 상황에서, 미국을 전복시키려는 테러 세력을 찾아나선다는 내용이다. 출간 직후 쇼타임에서 드라마화 하기로 결정했다. 북미에서만 판매량이 100만 부를 돌파하는등 미국 대중들에겐 반응이 좋았던 반면 평단의 반응은 차가웠다. 사실 작가 두 사람의 이름값을 내려놓고 본다면 소설 플롯 자체는 흔한 이야기고 반전도 예측 가능하다. * 미국 선거사에서 재밌는 기록을 하나 가지고 있는데, 첫번째 대선에서 43.0%, 두번째 대선에서 49.2%의 총 득표율을 기록하면서 미국에서 두 번 다 선거를 통해 [[재선]]에 성공한 대통령들[* 1기 임기를 전임 대통령의 유고 등의 상황으로 인해 승계해서 치른 경우 등은 제외한다는 뜻이다.] 중 같은 민주당의 전임 대통령인 [[우드로 윌슨]]과 함께 한 번도 대선에서 득표율 50%을 넘기지 못한 유이한 대통령이라는 기록을 가지고 있다. 이는 미국 대선 역사상 드물게도 빌 클린턴이 치른 두 번의 대선에서 [[로스 페로]]라는 제3후보가 등장해서 18.9% - 8.4%를 기록하며 선전했기 때문이다. * 아칸소 주지사 시절 유약한 자신의 이미지를 바꾸기 위해, 'Ricky Ray Rector'란 범죄자를 사형시켰다. 문제는 이 죄수가 정신지체였다는 점이다. [[크리스토퍼 히친스]]가 빌 클린턴을 공격할 때 인용하는 레퍼토리중 하나다. * [[해리 S. 트루먼]] 대통령 이후 50년 가까이 이어져왔던 직업 군인 출신 대통령의 전통이 이 사람 대에서 멈췄다.[* 트루먼부터 전임인 [[조지 H. W. 부시]]까지 모두 군 장교로 복무한 경력이 있었으며, 특히 [[존 F. 케네디]] 대통령부터 [[지미 카터]] 대통령까지는 모두 해군 장교 출신이었다.] * 대통령에 당선된지 30년이 되어가는데도 불구하고 오바마 다음으로 가장 최근에(1946년 8월) 태어난 대통령이다. 동갑내기 후자인 [[조지 W. 부시]]보다 1달 늦게 태어났고, 후후후자인 [[도널드 트럼프]]보다 2달 늦게 태어났으며, 그보다 28년 늦게 취임한 [[조 바이든]]보다 4살 어리다.[* 클린턴은 미 역사상 세번째로 젊은 대통령이었고, 트럼프는 취임 당시 역대 최고령 대통령이었으며, 바이든은 이 기록을 무려 8년 차이로 깨버린 현재 역대 최고령 대통령이다. 빌 클린턴은 상당히 젊은 나이에 대통령이 됐고, 50대 중반이던 부시는 역대 미 대통령 중 딱 평균적인 나이에 취임했으며, 트럼프와 바이든은 유례 없을 정도로 나이가 많은 대통령이다. 클린턴이 미국 역사상 최고의 경제호황을 이끈 대통령이란 점 외에도 젊고 키크고 잘생기고 쿨한 대통령이란 점도 인기요소 중 하나였다.(능력 외 인기요소가 상당히 많다는 점은 오바마와도 같다. 둘 다 달변이기도 하다)] * [[1998년]] [[청와대]] 방한 시 [[김대중]] 대통령과의 사진촬영에서도 뒷짐을 지는 결례를 범하기도 했다. [youtube(nJOnxUBaCQY)] * 이 시기인 [[1997년]] [[6월 24일]], [[MBC 뉴스데스크]]에서 한국 정치외교 사학회가 전국의 고등학생과 대학생을 천여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4대 강국 가운데 한국의 안보에 가장 위협을 줄 수 있는 나라로는 응답자의 10명중 4명이나 [[미국]]을 꼽아 이 조사에서 90년대 들어 심해진 혐미, [[반미]]감정을 잘 나타내었다. 이 조사에선 미국다음으로 일본, 중국, 러시아를 꼽아 한국과 통상마찰이 잦은 미국과 일본에 더욱 반감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 [[https://imnews.imbc.com/replay/1997/nwdesk/article/1979744_30717.html|한반도 전쟁 발발시 청소년 3명중 1명 피난가겠다]]] 90년대 클린턴 행정부 시절 [[한미관계]]는 안보적으로는 [[안기부]]의 미국인 간첩 구속사건과 [[IMF]]사태등으로 역대 최악의 관계를 가졌다. [[파일:Screenshot_20200818-133052_Samsung Internet.jpg|width=100%]] * 미국의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은 1990년대 재임 시절 우크라이나에 핵무기를 포기하도록 설득한 데 대해 후회감을 표시했다. 1993~2001년 미 대통령을 지낸 클린턴은 최근 아일랜드 RTE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우크라이나가 여전히 핵을 보유하고 있었으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그들(우크라이나)이 핵무기 포기에 동의하도록 설득했기 때문에 개인적인 책임을 느낀다면서 우크라이나가 계속 핵무기를 가지고 있었다면 러시아가 이 같은 어리석고 위험한 일을 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클린턴 전 대통령은 보리스 옐친 전 러시아 대통령, 레오니트 크라프추크 전 우크라이나 대통령 등과 함께 우크라이나의 핵포기 협정인 부다페스트 양해각서 체결을 주도했다. 1994년 체결된 이 양해각서는 옛 소련에서 독립한 우크라이나·카자흐스탄·벨라루스가 핵확산금지조약(NPT)에 가입하고 핵무기를 포기하는 대가로 주권과 안보, 영토적 통합성을 보장받는 내용을 담고 있다. 미국·러시아·영국이 이 협정에 서명했다. [[https://news.kbs.co.kr/news/mobile/view/view.do?ncd=7644914|클린턴, 우크라이나에 핵 포기 설득 후회 kbs]] [[https://www.google.com/amp/s/m.yna.co.kr/amp/view/AKR20230409013100009|클린턴 전 美대통령이 상기한 '우크라 핵포기비핵화례와 북한 연합뉴스]] [[https://www.google.com/amp/s/m.khan.co.kr/world/america/article/202304061714001/amp|클린턴 우크라 핵무기 남겼더라면··· 과거 핵포기 설득 후회 경향신문]] 이런 미국과 국제정세의 현실에서 [[한반도 비핵화]]와 북한의 비핵화가 가능할 것인지는 여전히 큰 논란으로 남아있는 상태다. 미국 대통령의 이런 발언은 [[대한민국의 핵무장]]의 정당성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